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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 유수봉
방랑자 / 유수봉
이십 년 전 이 거리를 걸을 때면 문득 다방에서 만났었던 미모의 그 여인이 뇌리를 스친다.
이곳 솔 다방 그녀와 만남은 우연이었지
비 오는 오후 잠시 비를 피해 갈까 망설이다 찾은 곳이 이곳 솔 다방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7시 반
그와 나는 건너편에 마주앉아
그는 홍차를 나는 칡차를 마시며 무료하게 시간이 흐르고
다방 마담에게 바깥 비 오는 소식을 물어보았으나
그칠 기미는 없고 통금 시간은
모르는 사이 다가와 조바심만 느껴지고
마담과 셋이서 또다시 각자 차를 시켜
비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소용없는 시간만 흘러갔다.
이윽고 자정이 되어 통금이 시작되고
다방엔 문을 내리고 오색등이 다방의 썰렁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서로의 눈동자는 들고양이 마냥 반짝거리며 침묵을 깨고
이제야 빤히 처다보며 숙수러운
가벼운 웃음이 흐르고 서로의 다방의 놀러 온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녀의 남편은 자동차 국외 지사에 3년째 근무 중이라 가끔 전화만 오는데
애들은 다 커서 고등학교 다니고
주부로서 집에 처박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캄캄한 실정이라 말하며
잠시 시내 구경차 나왔다가 비 때문에 들른 곳이 이곳 솔 다방이라 했다.
그여인의 애틋한 남편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을 거리낌 없이 토로했다.
그여인의 남편과 나는 대조적,
허다한 날 이렇게 술이나 마시며
다방을 전전하는 나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국내경기 침제로 본의 아닌 길거리가
하루의 일과였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들른 곳 이곳 솔 다방
그여인의 순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였어도
그보다도 더 아름다움을 선사 받았다.
외국에 파견 근로자로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그 남편의 모습이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나는 이렇게 방황을 길을 걸어야 할까
통금이 풀리고 한 병 나눔 이야기 꽃으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지금의 나를 전화위복으로 이끌었다고
자부하고 싶다
밤을 지새운 새벽, 비 그친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이 오늘따라 유심히 황홀하게 보였다.